2024/11 6

단짝

https://youtu.be/qkGJJymr93s?si=gJiHiNA3BstuYy-Q    자그마치 삼 년만의 연락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쪽은 어제도 널 보았지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금빛 소식을 안고 귀국한 넌 이 좁은 나라에서 요즘 가장 화제의 인물이었고. 이례적인 사건이라며 세계 각지에서도 네 이름과 사진을 포스터와 전광판에 띄우기 바빴으니까. 졸업하기도 전에 유학을 가겠다고 떠나더니 기어코 학교 정문에는 며칠 가지 않아 큼지막한 현수막까지 내걸리며 요란스럽게 널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친분에 관계없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너에게 말을 걸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하고 그 영광스러운 손과 악수하기를 고대하고 고대하는 와중에 학교 인터뷰며 행사며, 심지어는 이사장..

스터디 2024.11.26

0과 0

밤에는 자기 싫고 아침에는 더 자고 싶고, 주말에는 일찍 눈이 떠지고 주중에는 곧 죽어도 눈 뜨기 싫은. 현대인들 누구나 공감하는 불평과 희망사항은 주 5일, 아침 6시 반에 들숨날숨과 함께 자연스레 튀어나오곤 한다. 절기가 바뀌면서 아침 해도 늦잠을 자는 마당에 나는 왜 눈꺼풀에 피곤을 묵직하게 매달고서 억지로 일어나야 하냐며. 매일매일이 새롭게 피곤하고 새롭게 졸리운 이 아침에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세상이 미쳤거나 내가 미쳤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우스갯소리로 그런 소리들을 한다. 부스스 눈을 떴을 때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방 안을 채우고, 창 밖에선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묘하게 개운한 몸부림 섞인 기지개를 켜고 있으면 어색한 평화가 곧 불안이 되고 그 불안은 저를 침대 밖으로 내..

스터디 2024.11.22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

평소 제 집 드나들듯 벌컥벌컥 열어재꼈던 보건실 문이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어지간히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라는 건 마음먹은 순간부터 긴장되는 일이 아니던가. 마냥 천사 같은 선생님을 속여야 한다는 양심의 가책, 그렇지만 내 최애의 출근길은 직접 보고 싶은 간절함. 두 감정 사이에서 옥신각신 고민하면서 꾹- 눈을 감고 손잡이를 돌렸다. 이번 활동이 끝나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내 곁을 떠나야만 하는 최애의 남은 순간들을 최대한 눈에 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실물은 딱 한 번만 보기만 하면 만족하고 끝일줄 알았던 먼 옛날의 헛소리는 이미 집어던진 지 오래다. 실제로 보면 더 잘생겼는데 화면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스케줄 하나, ..

스터디 2024.11.15

드레스와 불합리

16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코르셋은 미용을 목적으로 허리를 조이는 복대 형태의 기능성 속옷이었다. 지금에서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인식이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가녀리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신체의 여성을 최고 미의 상징으로 여겼다나. 갈비뼈가 부러지고 숨을 쉬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격정의 시대를 살던 귀족 여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를 꽉 졸라맸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 프랑스에서 10시간 하고도 한참 날아와야 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옷에 사람을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잠깐만! 야야, 야. 잠깐만!! 살! 살 찝혔어!!" "아~! 될 수 있었는데!" "염희수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유하~ 오늘은 드레스 피팅하는 날~ 이번 영상의 협찬 브랜드가 궁금하다면? 구독, ..

s-17

그는 짜증스럽게 말했다.이런 사소한 일로 더 이상 감정소모 하기 싫다고. 짜증을 담아 물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을 때부터 주변엔 눈에 띄게 정적이 감돌았고끝내는 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마자 수근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라는 이야기가 귓가로 흘러 들어오면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그 면상에 생수라도 끼얹었으면 이렇게까지 열불이 나진 않았을 텐데.까맣게 타다 못해 잿더미가 된 속에 냉수를 들이부었다. 오냐오냐 대해줬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나오는구나.이래서 연하는 안돼.주변에서 뜯어말리던걸 귀 막으면서 '우리 애는 다르다'고 말했던 게 후회됐다.욕 처먹겠네, 이거.한숨이나 푹 쉬며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아침부터 꿀꿀하게 하늘이 흐리더니만 곧 창문에는 물자국이 길에 늘어졌고토해내듯 쏟아지는 ..

스터디 2024.11.08

축제

"어허?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돌아오시오? 중간에 도망이라도 친 거요?""에헤이~ 날 뭘로 보고. 간만에 하는 축젠데 안사람이랑 놀러 가지 않고 뭐 하냐고.. 한소리 듣고 오는 길이네만..."".. 빌어먹게 친절한 사람들 같으니라고...""사방에서 온 관심을 기울여주는데 부응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지 말고 나갑시다. ..그러니까.. ..부인."".. 하.." 당사자들의 의견은 온데간데없었던 혼례식 이후로 자칭.. 타칭 신혼부부가 된 두 사람은 여즉 호칭 변화가 익숙치 않았다. 둘이 있을 때에도 불러버릇하 자고 한 약속이 무색하게 급기야는 서로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나마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입을 떼고 있는 참이었다. 어색하게 '서방, 부인' 부르는 모습이 되려 풋풋한 신혼의 모습을..

카테고리 없음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