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자기 싫고 아침에는 더 자고 싶고, 주말에는 일찍 눈이 떠지고 주중에는 곧 죽어도 눈 뜨기 싫은. 현대인들 누구나 공감하는 불평과 희망사항은 주 5일, 아침 6시 반에 들숨날숨과 함께 자연스레 튀어나오곤 한다. 절기가 바뀌면서 아침 해도 늦잠을 자는 마당에 나는 왜 눈꺼풀에 피곤을 묵직하게 매달고서 억지로 일어나야 하냐며. 매일매일이 새롭게 피곤하고 새롭게 졸리운 이 아침에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세상이 미쳤거나 내가 미쳤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우스갯소리로 그런 소리들을 한다. 부스스 눈을 떴을 때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방 안을 채우고, 창 밖에선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묘하게 개운한 몸부림 섞인 기지개를 켜고 있으면 어색한 평화가 곧 불안이 되고 그 불안은 저를 침대 밖으로 내던진다고. 그 이야기가 왜 지금 생각나냐고? 오늘 내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질 않았으니까. 오전 9시까지 출근, 업무시작이 회사와 내가 근로계약서로 묶은 사회적 약속이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오전 10시였으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화장실에서 세수는 했는지 이빨은 닦았는지. 어제 저녁에 대충 집어던졌던 옷을 주워 입고서 뛰쳐나왔다. 분명히 충전은 했는데 어째서 알람이 울리지 않은 거지. 전원 버튼을 몇 번이나 눌러도 눈 뜰 생각을 안 하는 멍청한 벽돌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괜한 화풀이를 했다. 그보다도 회사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이미 내 책상 사라진 거 아냐? 시기상 겨울이 맞음에도 아찔한 상상에 식은땀이 줄줄 새어 나왔다. 헐레벌떡 도착한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을 올려다보면 지직- 거리는 이상 송출만 반복되고 있었고, 이 놈의 전광판은 대체 언제 고쳐지는 거냐며 혀 차는 소리나 냈다. 대형 지각을 한 김에 대놓고 늦장 부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한국인 유전자인 조급함을 견디지 못하고서 다시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큰 사거리까지 가면 적어도 택시라도 잡을 수 있겠지.
출근 시간은 지났으니 차는 덜 막힐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밀어내고서 그 번화한 거리의 혼비백산한 장면과 정보값을 뇌까지 실어 나르는 데에는 족히 5분은 걸렸던 것 같다. 교통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사이렌처럼 들리도록 사방에서 울려댔지만 무엇 하나 통제되는 것은 없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자동차들은 앞, 뒤, 옆 성한 곳 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이 정도의 대형 사고라면 휴대폰에서는 진작 경보 알림이 울렸을 텐데. 그리고 제 주머니의 휴대폰은 여전히 숙면 중이었고 뉴스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높은 빌딩의 전광판을 올려다보아도 새까만 화면만 가만히 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무나 신고를 좀 해달라는 비명 소리, 고함 소리, 애타게 누군갈 찾는 울음소리. 나갔던 퓨즈가 깜빡깜빡 되돌아오고 가까운 주변을 돌아보면 저만큼이나 정신이 반쯤 나가서 새까만 화면의 휴대폰만 두들기는 사람들이 사방 천지에 깔려있었다. 나 혼자만 겪은 기이한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다음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의 공포감이 조용히 주변으로 퍼져간다. 겨우 손바닥만 한 얇은 판때기가 뭐라고, 검정화면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던 흐름이 뚝. 끊기면 동시에 사람은 불안감을 느낀다. 떨어트리면 유리처럼 깨져버리는 작고 하찮은 고철 덩어리에 너무 크게 의지한 나머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손가락은 쉬이 접히질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두의 손가락이 멈췄다. 온 세상이 바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