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돌아오시오? 중간에 도망이라도 친 거요?"
"에헤이~ 날 뭘로 보고. 간만에 하는 축젠데 안사람이랑 놀러 가지 않고 뭐 하냐고.. 한소리 듣고 오는 길이네만..."
".. 빌어먹게 친절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사방에서 온 관심을 기울여주는데 부응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지 말고 나갑시다. ..그러니까.. ..부인."
".. 하.."
당사자들의 의견은 온데간데없었던 혼례식 이후로 자칭.. 타칭 신혼부부가 된 두 사람은 여즉 호칭 변화가 익숙치 않았다. 둘이 있을 때에도 불러버릇하 자고 한 약속이 무색하게 급기야는 서로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나마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입을 떼고 있는 참이었다. 어색하게 '서방, 부인' 부르는 모습이 되려 풋풋한 신혼의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고 마을 사람들을 대변해 전한다면 뒷목을 잡고 뒤집어질 테지만.
나름이라는 말 보다도 꽤나 물 좋고 공기 좋은 이 고을은 특히나 벌레가 많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보지 못하는 것들도 보인다는 게 자랑거리이기까지 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녀석을 보면 신기해하며 웃기에 바빴고 6월 말 즈음에는 그 모습이 절경에 장관인지라 숲과 가까운 곳은 등불과 달빛에 의지하지 않아도 한밤 중에 나돌아 다닐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마을의 큰 어르신들이 한참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선 다가올 여름을 비교적 기쁘게 맞을 수 있었다. 시장에서는 축제라는 빌미로 낮 밤 할거 없이 사람들이 붐벼 웃음소리와 등불 빛이 가득이었고, 반대편으로는 호수로 이어지는 숲길에선 사방 여기저기서 작게 반짝이는 노랗고 파란빛들이 행렬을 이었기에 어느 누구라도 즐거울 수밖에 없는 이름 그대로의 축제였다. 게다가 숲을 지나 그 가운데 크게 자리 잡은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소원을 빌면 무수한 반딧불들이 그 바램들을 가지고 하늘까지 가져다준다는 이야기까지 있었기에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었다. 가족의 건강, 불타는 청춘, 간지러운 연심, 빛나는 성공길. 각자 저마다의 부푼 마음을 가지고 오는 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아무래도 소문이 소문인지라 젊고 수줍은 청년들이 특히 붐볐고 지긋한 어른들은 그저 흐뭇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인파에 밀려 호수가까지 밀려온 이 부부의 등장은 이미 누군가 그토록 바라는 관혼 중 하나를 치뤘음에도 욕심 많게도 단란히 무언갈 바라는 모습으로 비치기 딱 좋았기에 누군가들에겐 반딧불만큼이나 흥미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사방에서 힐끔힐끔 날아오는 시선이 옆얼굴을 따끔따끔 찔렀고 이 부부는 그저 금슬 좋은 척 웃으며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대화하는 진기명기나 펼치고 있었다.
"내 자존심까지 내려놓으면서 소문을 겨우 잠재웠는데 설마 하니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소.."
".. 황새로도 모자라 반딧불한테까지 바라는 측은한 인간들로 보일 것 같네만.."
"산 넘어 산이오.."
"어차피 그냥 뜬소문이니까 신경 쓰지 마시게. 후딱 돌고 돌아감세. 내일도 일찍 나가야 할 사람이 그대.. ..서방뿐은 아니니까."
"크흠.. ..그나저나 의외요? 전에는 야밤에 겁도 없이 돌아다녀놓고 말이오."
"하? 대체 그때 얘기는 언제까지 우려먹을 작정이오? 그리고 지아비 있는 여편네가 야밤에 돌아다니면 퍽이나 좋은 소문 돌겠네!"
"에헤이.. 목소리 낮추시오 그, 부인. 농일세, 농.. 옛날 생각이 나니까 그런 거 아니오.. 그리고 지금은 서방이랑 같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요?"
"가만 보면 아주 심취해서 즐기고 있는 것 같소."
"한 집 사는 마당에 화만 내고 살면 달여 먹을 약만 늘어나지 않겠소~"
한 대화마다 누구 하나 발끈하지 않고 끝내는 방법은 어찌해야 실철할 수 있는지. 심란한 얼굴들이 그제서야 편히 풀어지는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지나쳐온 대화를 곱씹다가 기시감을 느꼈고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머릿속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투닥대는 소리가 생생히 울렸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려고 작정했소? 겁도 없이 야밤에 혼자 나다니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내 그대에게 혼나야 하는 연유를 모르겠소!'
'염려되니까 하는 말이잖소! 어지간하면 날 부르거나! 혼자 다니지 마시오!'
'허.. 그대가 내 지아비라도 되는 줄 아시오?'
반짝- 눈앞에서 반딧불 한 마리가 제 존재를 이쁘게 과시하며 포르르 날아 사라지면 다시 시야가 선명해졌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결국.. 우리가 참 괜한 말들을 했었구나 싶었는지 이내 조용히 입 다물고 있다가 바람 빠지는 소리나 내며 웃었다.
"왜 그러는감? 뭐 재밌는 일이라도 있소?"
"아니, 뭐.. 별거 아닐세. ..있소, 그런 게."
"궁금하게 만들어놓고는 싱겁게.. 떼잉"
"말하면 타박이나 들을 것 같으니 입 다물겠네! 그러지 말고 우리도 야시장이나 가는 게 어떻소, 부인?"
"... 백날천날 곰이라고 말했던 거 취소요. 아주 능구렁이가 다 됐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을 사람들이 한동안 조용하지 않겠냐며 보란 듯이 제 부인되는 사람의 손을 잡아끌었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인 마당에 아무렇지 않게 닿았던 그 시절엔 사방에서 기겁하기에 바빴던 것 같은데 조금 지나 되려 본인들이 괜히 주변을 신경 쓰게 된 이 상황이 참 기묘했다. 아슬아슬한 이 생활이 과연 언제까지고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한 와중에 그런 머리 아플 일을 미리 끌어와 고민하는 건 제 성미에 맞지 않는다 싶었는지 얼빠진 사람마냥 큰 소리로 웃기나 했다. 매 축제마다 큰일이 닥쳐오니 이젠 다가올 다음 축제들이 기대되기까지 한다면 미친 건가? 스스로 넘겨짚으며 잡고 있는 작은 손을 흔들며 남은 둘레길을 내달렸다. 곧 타박과 함께 엉덩이를 걷어차일 일 또한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