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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와 불합리

16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코르셋은 미용을 목적으로 허리를 조이는 복대 형태의 기능성 속옷이었다. 지금에서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인식이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가녀리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신체의 여성을 최고 미의 상징으로 여겼다나. 갈비뼈가 부러지고 숨을 쉬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격정의 시대를 살던 귀족 여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를 꽉 졸라맸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 프랑스에서 10시간 하고도 한참 날아와야 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옷에 사람을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잠깐만! 야야, 야. 잠깐만!! 살! 살 찝혔어!!" "아~! 될 수 있었는데!" "염희수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유하~ 오늘은 드레스 피팅하는 날~ 이번 영상의 협찬 브랜드가 궁금하다면? 구독, ..

s-17

그는 짜증스럽게 말했다.이런 사소한 일로 더 이상 감정소모 하기 싫다고. 짜증을 담아 물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을 때부터 주변엔 눈에 띄게 정적이 감돌았고끝내는 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마자 수근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라는 이야기가 귓가로 흘러 들어오면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그 면상에 생수라도 끼얹었으면 이렇게까지 열불이 나진 않았을 텐데.까맣게 타다 못해 잿더미가 된 속에 냉수를 들이부었다. 오냐오냐 대해줬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나오는구나.이래서 연하는 안돼.주변에서 뜯어말리던걸 귀 막으면서 '우리 애는 다르다'고 말했던 게 후회됐다.욕 처먹겠네, 이거.한숨이나 푹 쉬며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아침부터 꿀꿀하게 하늘이 흐리더니만 곧 창문에는 물자국이 길에 늘어졌고토해내듯 쏟아지는 ..

스터디 2024.11.08

축제

"어허?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돌아오시오? 중간에 도망이라도 친 거요?""에헤이~ 날 뭘로 보고. 간만에 하는 축젠데 안사람이랑 놀러 가지 않고 뭐 하냐고.. 한소리 듣고 오는 길이네만..."".. 빌어먹게 친절한 사람들 같으니라고...""사방에서 온 관심을 기울여주는데 부응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지 말고 나갑시다. ..그러니까.. ..부인."".. 하.." 당사자들의 의견은 온데간데없었던 혼례식 이후로 자칭.. 타칭 신혼부부가 된 두 사람은 여즉 호칭 변화가 익숙치 않았다. 둘이 있을 때에도 불러버릇하 자고 한 약속이 무색하게 급기야는 서로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나마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입을 떼고 있는 참이었다. 어색하게 '서방, 부인' 부르는 모습이 되려 풋풋한 신혼의 모습을..

카테고리 없음 2024.11.05

감기

형식상 맞춰둔 오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나 미리 취소 버튼을 누르는 게 평소의 루틴이었다. 유독 머리가 무겁고 몸이 축축 처지는 오늘은 예외였지만. 5분 단위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 것조차 힘에 부쳐 무력하게 베개 밑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숨 쉬기가 묘하게 답답하고 머리는 멍하니 익었고 두툼한 이불을 덮었음에도 몸이 으슬 떨려왔다. 아무래도 감기임이 틀림없었다. 어제 창문을 열어놔서 그랬나, 머리를 덜 말려서 그랬나.. 그치만 항상 이랬는데. 이유를 찾기에는 제 머리가 마음만큼 따라와 주지 않았기에 힘겹게 몸을 뒤집어 겨우겨우 팔을 뻗어 핸드폰이나 조용히 시켰다.  살아오면서 거의 감기에 걸릴 일이 없었기에 유독 더 몸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까 요즘에 독감주사 맞으라고..

38°C

https://youtu.be/NkDmqUv8FeE?si=-7zpvuP6IJwSI9pf   "아키라 샤워했어?""응? 응. 물 떨어져? 머리 아까 다 말렸는데." 아니이- 좋은 냄새나. 어깨를 덮은 머리카락으로 손장난을 치다가 푹- 코를 박으면 그 콧김이 괜히 목께를 간지럽혀 잠시 어깨를 떨었다. 4인 가족이 쓰기 딱 좋은 사이즈의 코타츠였지만 덩치 좋은 장정 둘이 들어가 누워있으니 조금 비좁기까지 했다. 붕어빵은 금세 해치워버리고 선물 들어온 귤이 있다며 몇 알을 또 까먹고.. 4년 전 즈음에 흥행했던 영화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면 그 소리는 그저 배경음으로 삼고서 두런두런 얘기나 주고받았다. 부모님은 잘 도착하셨대? 응- 거긴 지금 낮일걸? 우리도 내년엔 해외여행 갈까? 신임교사는 바쁘잖아-방학에 가면 ..

카테고리 없음 2024.10.24

꽃잠

본디 성격이 급한 편이긴 했다. 꿀 같은 쉬는 시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활 쏘는 연습이 하고 싶다며 뛰쳐나가 동기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고, 움직이지 말라던 의원나리의 말을 무시한 덕에 꿰맨 자국이 또 터져 애먼 살까지 바늘에 찔릴뻔한 적도 있었다. '그리 성격이 급해서야 자네는 혼례 전에 애부터 생기겠네!' 저들 딴엔 농이랍시고 가벼이 던지던 동기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던 게 딱.. 달포 정도 되었나. 혼례라는 단어는 여즉 저에게 연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남은 활이나 쏘러 갔더랬지. 그리고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른다는 걸.. 비소로 오늘 몸으로 체험했다. 무슨 정신으로 하루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새신랑이랍시고 여기저기 불려 가는 게 맞나. 그러보니까 어릴 적 살던..

카테고리 없음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