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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기

고되고 알찬 하루였다.동네를 한 바퀴 돌고, 해안가를 걷고, 나름 충격적이었던 무화과 탕후루까지.동창회라더니... 정말 여전히 특이한걸 시켜..그래도 재밌었으니까.. 간만에 오래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니까.. 4년 만에 오는 집이었다.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상전이었던 너는 나를 알아봐줄까..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만큼이나 긴장했던것도 같다.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비비는 모습에 괜한 걱정임을 알았지만 말야. 당연히 익숙해야할 제 집이지만 조금 낯선 기분.오히려 저가 아주 간만에 오는 손님이 된 기분.한참을 두런두런- 따뜻한 안부를 주고 받았다. 방으로 돌아와 풀썩- 침대 위로 쓰러지면 그제서야 피로가 몰려왔다.발바닥이 웅웅- 비명지르고 홧홧하게 제 존재..

세 번째 여름 2024.09.02

오늘의 날씨는-

영국의 날씨는 언제나 제멋대로다. 우산을 챙기면 그저 하루종일 찝찝하게 흐리기만 했고간만의 맑은 날이 반가워 가방을 조금 가벼이하면 변덕스레 비가 쏟아졌다. 기분 낸다고 흰 원피스를 입는게 아니었는데..바보같이 들떠서는 평소라면 안했을 실수를 했다.... 다 젖었네. 여름의 끝물이라지만 생쥐꼴이 된 지금은 조금 오한이 들 지경이었고.이대로 가다간 언제가처럼 지독한 감기에 걸릴라..운이 좋았던걸까.비를 막 피하려 서있던 곳은 마침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라서 홀린듯 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 끝부터 젖은 제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금새 저에게 담요부터 둘러주던 사장님은 어쩐지 할머니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주문하고서 안쪽의 소파로 자리를 잡으니 그제서야 창 밖 풍경이 보였다... 많이도 내리..

세 번째 여름 2024.08.27

눈에는 눈

"....정말로, 미안해." 종국에는 듣고야만 그 문장에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네 것과 똑같은 제 몫의 머그잔만 만지작댔다. 왜 저를 쓰다듬지 않냐고 네 발치에서 머리만 꾹꾹 들이미는 이니를 바라봤다.동물들이 참 잘따르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던데, 틀린 말도 아닌가보다.심란한 마음에 잠시 딴 생각으로 환기를 시켰던 것도 같다. "..치치 얘기할 때. 성우 행복해보여서.""그래서 난 둘의 안부가 항상 궁금했어." 성우가 이니를 이뻐하는것처럼.종종 어떤 간식을 좋아하는지 묻는것처럼-내 마음도 그랬어. 가만 네 얘기를 들으면 더더욱 저가 이 사과를 받는게 맞는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굳이굳이 따지면..남을 과하게 위한다는 점. 그것도 아니라면 네가 섬세하다는 것. 그것도 아니라..

세 번째 여름 2024.08.26

고양이 손이라도-

"이니, 좀 내려와줘." 엎어진 제 등 위에 올라 타 평화롭게 식빵이나 굽는 고양이를 툭툭 건드렸다.3년 전 마냥 가볍지 않아- 등이 뻐근해질 것 같지만 모질게 내치지는 못했다.여즉 내려올 생각이 없는지 골골 거리기까지 하면 베개에 푹- 고개만 기댈뿐이었다.이러고 있으니까 조금 심란한 사람 같잖아.물론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어떤 말을 했을 때 아차- 싶었다던가, 뱉은 말을 후회했던 적은 없었다.적어도 그제까지는 그랬다. 넌 언제나 이니를 이뻐했으니까,곤란할 법한 제 부탁에 같이 고민해주고 선뜻 이름까지 지어줬으니까.이니가 제 가족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너에게 가장 먼저 전했었고어쩌다보니 가끔- 사실 어쩌면 자주 서로의 집에 있을 작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곤 했으니까. 아주 간만에 공부 얘기가 아닌 ..

세 번째 여름 202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