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날씨는 언제나 제멋대로다.
우산을 챙기면 그저 하루종일 찝찝하게 흐리기만 했고
간만의 맑은 날이 반가워 가방을 조금 가벼이하면 변덕스레 비가 쏟아졌다.
기분 낸다고 흰 원피스를 입는게 아니었는데..
바보같이 들떠서는 평소라면 안했을 실수를 했다.
... 다 젖었네.
여름의 끝물이라지만 생쥐꼴이 된 지금은 조금 오한이 들 지경이었고.
이대로 가다간 언제가처럼 지독한 감기에 걸릴라..
운이 좋았던걸까.
비를 막 피하려 서있던 곳은 마침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라서 홀린듯 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 끝부터 젖은 제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금새 저에게 담요부터 둘러주던 사장님은 어쩐지 할머니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주문하고서 안쪽의 소파로 자리를 잡으니 그제서야 창 밖 풍경이 보였다.
.. 많이도 내리네 정말.
처음엔 여우비처럼 내리던것이..
어느새 하늘마저 우중충하게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잔뜩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우산이라도 빌려야하려나.
그리 생각하며 담요 끝을 만지작거렸고, 하릴없이 카페를 둘러봤다.
학교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그러다 문득-
출입문 바로 위에 있는 둥지 모형을 발견했다.
따뜻한 조명에 엔틱한 목재 가구들.
조각 장식들과 중간중간 섞여있는 작은 인형들.
둥지 안에는 작은 털뭉치 두어개가 옹기종기 모여있는듯 싶었다.
완전히 똑같진 않아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어쩔 수 없단말야.
저가 주문한 차까지 나오면 그저 가만히.. 턱을 괴고선 창 밖을 쳐다봤다.
"그러고보니까..."
문득 몇년 전 일이 떠오른건 어째서일까-
확실 그때는.. 좀 더 덥구, 저녁이었고....
.. 혼자가 아니었지-
제 장단에 맞춰주던 친구가 있었잖아.
하늘은 여전히 거뭇거뭇하고, 구름은 빠르게 움직였다.
아마도 내일까지 비가 내리겠지.
그럼에도 어쩐지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야 지금 난 따뜻한 카페에 있고
담요도 있고
차도 있고
조금 기분 좋은 추억도 떠올랐거든.
몇 번 입지 않은 흰 원피스를 희생한 대신
제 노트북 가방은 사수했더랬지.
머그잔을 살짝 치워두고서 노트북을 펼쳤다.
[있지- 혹시 거기도 비 와?]
두서없고, 이유도 없고.
하지만 궁금한걸.
그러게 누가 떠오르랬나-
제멋대로 이유나 붙이며 저도 조금 예고없이 굴고싶어졌으니까.
딸깍-
너에게도 '변덕'을 보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