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여름

다시, 여기

감자장군 2024. 9. 2. 22:33

고되고 알찬 하루였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해안가를 걷고, 나름 충격적이었던 무화과 탕후루까지.

동창회라더니... 정말 여전히 특이한걸 시켜..

그래도 재밌었으니까.. 간만에 오래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니까..

 

4년 만에 오는 집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상전이었던 너는 나를 알아봐줄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만큼이나 긴장했던것도 같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비비는 모습에 괜한 걱정임을 알았지만 말야.

 

당연히 익숙해야할 제 집이지만 조금 낯선 기분.

오히려 저가 아주 간만에 오는 손님이 된 기분.

한참을 두런두런- 따뜻한 안부를 주고 받았다.

 

방으로 돌아와 풀썩- 침대 위로 쓰러지면 그제서야 피로가 몰려왔다.

발바닥이 웅웅- 비명지르고 홧홧하게 제 존재를 과시했다.

 

변한건 없었다.

너희는 여전했지만 23살 어른이 돼버렸고,

몰라볼뻔했지만 4년 전, 19살 그 여름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콧대를 누르는 안경을 벗고서 눈을 지그시 눌렀다.

.. 좋은 냄새..

저가 없는 시간에도 여전히 관리를 해주신건지-

여전히 베개에선 햇빛이 바싹 말라 굳은 냄새가 났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아우성을 칠 때,

제 관자놀이께에 닿는 이물감.

 

맞다, 이거..

부스럭 몸을 일으켜 흐릿하게 보이는 거울에 고개를 돌려 비춰봤다.

과감히 머리를 자른 이후로는 딱히 쓸 일이 없었는데.

 

네가 조금 험하게 잠을 자고 온 날.

그냥 꽂아주고 싶었다.

가뜩이나 남 눈치도 많이 보는데 머리까지 신경쓰면 수업은 어떻게 듣겠어.

딱히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하하 맞아 그러고나서 뭘 받았더라..

사과맛 사탕이랑.. 맞다. 칼슘 뼈가 쑥쑥 우유맛 사탕.

어떻게 들고 가냐고 너한테 괜히 투덜거렸던 것 같다.

사실 맛있게 먹었는데 말야.

 

조금 낡아서 빛바랜 머리핀을 괜히 만지작댔다.

그 이후로도 잘 하고 다녀서 보기 좋았지.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하긴, 그땐 14살. 우린 지금 23살..

하하 징그러워-

 

마음에도 없는 소리나 하며 웃었다.

사실 여러모로 고마울 따름이었다.

잘 가지고 다녔던 것 같아서, 잘 지냈던 것 같아서.

똑같이 반겨줘서, 잊혀지지 않아서.

 

책상 맨 아래 서랍을 뒤적였다.

이쯤 있었던 것 같은데...

다섯 개에 한 세트였던, 지금은 네 개만 남은 머리핀 봉투를 찾았다.

 

커플굿즈라고 빙고판에 체크는 했는데 말야..

넌 정말로 이걸로 만족하는걸까.

더군다나 낡은걸 다시..

너도 참 특이해-

 

제 머리에 꽂혀 있던 머리핀을 빼서 종이봉투에 고이 담았다.

똑같은 디자인의 머리핀 한 개를 더 넣어서-

언젠가부터 제 가방 주머니에 자리 잡기 시작한 사과 사탕 하나는 서비스.

그리고 제 몫의 머리핀도 하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꼭 중학생때로 돌아간 기분이네.

 

어릴때보다 작아진 방을 휘익 둘러봤다.

침대도 책장도 책상도.

상장과 트로피도.

하하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네.-

 

다시 왔다.

그리웠던 내 방.

그리웠던 너, 너희.

 

그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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