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았다. ( = 뭘 하고 싶은지 여전히 스스로도 모른다.)
얇고 길게 사춘기가 이어지고 있다.
우연(偶然) : 아무런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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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리는 발걸음 소리는 급했고 조금은 신경질적이기까지 했다.
누군가를 찾는 듯 도중 빈교실을 기웃기웃 쳐다보기도 하고, 제 핸드폰을 켜 중간중간 시간을 확인했다.
유학생, 심지어 신입생한테.
어딨 는지도 모를 학생을 찾아오라는 게 말이 돼?
겨우 그 작은 나라 출신이라는 공통점 가지고.
같은 한국인이라고 뭐 다 구면인 줄 알아?
어지간히 화가 나더라도 구겨질 일 없던 미간이 조금은 좁혀졌다.
유학생이 많다고 홍보를 할게 아니라 행정실 인력을 교체하던가.
작게 곱씹으며 마저 계단을 내렸다.
적어도 과라던지, 연락처를 알려주던가.
이름만 겨우 알려주면 어쩌라는 거야.
둥글둥글한 발음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 되뇌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먼 길까지 왔네.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상대라서 그런가.
동질감이 드는 한 편 묘한 궁금증이 피었다.
내가 찾는 이는 어떤 원대한 꿈을 가지고 13시간이나 떨어진 이곳으로 온 걸까.
그리 생각하니 잠시 가슴이 꾸욱- 답답해졌던 것도 같다.
.. 알 게 뭐야.
이유도 모르고 너를 찾아야 하는 저는 지금 아까운 제 시간만 뚝뚝 흐르고 있는 걸.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것도 미련하다고 욕 하는 마당에 영국에서 이게 무슨-
다시 생각해 보니 속에서 열이 확 피었다.
내가 왜? 굳이 왜 찾으러 다녀야 하지?
반항인지 애꿎은 화풀이인지 속으로 혼잣말하며 우뚝 멈춰 섰다.
바쁘다고 난.
할 일이 많다고.
...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고.
'돌아가자'
그리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려 몸을 트는 순간,
잠깐 별이 보였던 것 같다.
방금 분명 '쾅-' 소리 났다고.
저항도 못하고 뒤로 나동그라지면서 머리핀이 툭 떨어졌다.
긴 머리칼이 제 갈 길을 못 찾고 아주 산발이 됐다.
... 오늘 정말 엄청나네..
멀리 가지 않은 머리핀을 주워 들고 다시 보니 제 손에 들려있던 악보들이 처량하게 복도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나저나 누구랑 부딪쳤지?
뒤늦게 고개를 돌리면 쭈그리고 앉아 제 악보를 줍고 있는 둥근 뒤통수가 보였다.
'애먼 사람한테 괜히..'
"Umm.. Sorry. Are you-"
"아, 죄, 죄송.. 합. 아."
아?
어째서인지 귀에 쏙 들어오는 익숙하고도 반가운 언어에 먼저 튀어나온 건 바보 같은 소리였다.
그제야 찬찬히 상대 얼굴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찌를듯한 앞머리 사이로 옅은 색이 비쳤다.
.. 김서방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