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여름

눈에는 눈

감자장군 2024. 8. 26. 01:52

"....정말로, 미안해."

 

종국에는 듣고야만 그 문장에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네 것과 똑같은 제 몫의 머그잔만 만지작댔다.

 

왜 저를 쓰다듬지 않냐고 네 발치에서 머리만 꾹꾹 들이미는 이니를 바라봤다.

동물들이 참 잘따르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던데, 틀린 말도 아닌가보다.

심란한 마음에 잠시 딴 생각으로 환기를 시켰던 것도 같다.

 

"..치치 얘기할 때. 성우 행복해보여서."

"그래서 난 둘의 안부가 항상 궁금했어."

 

성우가 이니를 이뻐하는것처럼.

종종 어떤 간식을 좋아하는지 묻는것처럼-

내 마음도 그랬어.

 

가만 네 얘기를 들으면 더더욱 저가 이 사과를 받는게 맞는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굳이굳이 따지면..

남을 과하게 위한다는 점. 그것도 아니라면 네가 섬세하다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치치를 사랑해서.

 

소심하고, 유약했던 그때보단 조금 더 단단해졌지만

넌 여전히 걱정이 많고, 정도 많고..

그래서 간혹 함께 나누는 큰 의미없는 대화가 좋았던거야.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잠시 너를 멀건이 쳐다봤다.

푹-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발끝에서 시선을 떼지못하는 널 보자니 쉬이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항상 옆머리에 있던 머리핀이 없는 탓인지 머리카락에 가려져 눈은 보이지 않았고.

 

"있지, 성우."

"..나 사과 안받을래."

 

어쩌면 저가 하는게 맞겠지.

하지만 이 사태에서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자면..

그저 서로 머쓱하게 웃고 넘기는게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사과하면, 성우 분명 아니라고 고개 저을거잖아."

"나 사실 조금은 예상했어. 성우 워낙에 걱정도 많고.. 괜히 분위기나 흐렸다면서- 꼭 그런 얘기하는 모습이 생각나서."

"안타까운 마음은 사실이야. 그리고... 사실 아니길 바랬어."

 

이런 일엔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할까. 

하지만 너에게는 이런 위로도 짐이 될까.

그런 생각이 스치지만.. 일단 진심은 전하고 싶었다.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기분 나빴던 것도 아니야."

물론 약간 서글픈건 있지만- 

"그러니까 나는.. 사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한 편으로는 조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 함부로 저울질 할 수 없었다.

이만큼 사과할 정도라면 당사자인 너는 얼마나 큰 슬픔에 허우적거렸던걸까.

안쓰럽기도하고, 고맙기도하고.

슬픔을 이겨내는것도 힘들었을텐데 네 고개는 왜 죄인의 모습까지 모방하는지.

 

네 머리 위에 손을 톡- 얹듯, 톡톡 토닥이다가.

그러다가 슬쩍 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이니 얘기에라도 곧장 와줬잖아. 그거면 돼."

"..도망가지 않았잖아, 성우."

 

한 편으로는 네가 저를 피할까봐 겁났다는 얘기는 하지않았다.

와중에 또 네가 기겁하는 표정이 눈에 훤해서.

 

"그래서 난 기뻐. 어제가 끝이 아니라서."

"우리 또. .. 얘기할 수 있어서."

 

그러니까 우리-

눈 보면서 얘기하자,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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