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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마이너스

https://youtu.be/c-J6aCh3QOs?si=r1xa33DnD8MxhD1R   엄밀히 따지고 보면 키타가와 아키라는 꽤 운이 좋은 편이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날에 학교에서 내심 걱정을 해도 집에 갈 즈음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게 개었고, 깜빡 잊은 문학 숙제를 어떤 빌미로 미뤄 제출할지 고민하고 있으면 시간표가 급히 바뀌기도 하고, 여름이면 사흘에 한 번씩 가리가리군의 '한 개 더!' 막대가 나오는 건 이젠 놀랍지도 않은 일상이었다. 꼭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한 게 어깨가 절로 으쓱였지만 이젠 열아홉이나 먹었으니 어디 가서 사사건건 자랑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저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었기에 새롭게 놀라울 일은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행운 넘치는 일은 근 10년 ..

카테고리 없음 2024.10.11

https://www.youtube.com/watch?v=3tatt4NZwLA 손 끝이 차츰 시리기 시작하는 계절. 언제나처럼 네 손을 잡아봤지만 손가락 끝엔 애매한 열감만 남아있었다.검지로 네 손바닥을 살살 간질이면 한참을 손장난을 치다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옭아매 깍지를 끼던. 별 의미 없지만 사소한 게 다 즐겁고 좋았던 계절은 한참 전에 지나쳐왔다. 손이 잡고 싶을 때면 무의식 중에 했던 버릇이, 손을 잡고 있으면 놓기 싫다던 욕심이 차츰 식어간다. 날이 추워지면 그냥 잡아야 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지금은 잡는 편이 분위기상 맞는 것 같아서.. 구차한 이유가 붙을때마다 손 끝이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라도 잡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 사이에 연결될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걸..

스터디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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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밖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눈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교실의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들었고 양 옆 반에서도 비슷한 녀석들이 있었는지 의자와 책상 밀리는 소리가 잠시 요란하게 일었다. 눈사람과 눈싸움이라는 단어가 시끌시끌하게 오갔고 발 빠른 누군가는 벌써 복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첫눈인데 그만큼 쌓이기나 할까.. 싶었지만 사실 빌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능까지 끝난 지금, 뜨끈하고 나른한 교실에서 애매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와중에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이벤트. 공부는 더 이상 하기 싫고 세 번이나 본 영화는 지루했고.. 수능 성적표가 나오지 않아 '아직은' 조금 더 천진할 수 있었다. 히터 열기에 잔뜩 따끈해진 뺨 위로 창문 사이로 새어들어온 찬 바람이 나앉았다. 적당히 제 뒷목을 간지럽히는..

스터디 2024.09.19

흉내

통통.. 턱턱...매끄럽게 이어지지는 못하고 도중 퉁- 하고 나무 도마를 내려치는 소리가 섞였다... 옆에서 봤을 때는 쉬워 보였는데... 칼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던가. 힘을 꽉 주어 쥔 탓에 오른손이 약간 바들거리기까지 했다. 항상 받기만 했지.. 직접 하는 건 역시 어렵구나. 식사 전, 언제나 너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지만... 방 너머 침대에 누워있을 너의 존재가 새삼 소중해졌다고 해야 하나. 언제까지고 받기만 할 수는 없지. 갚자, 은혜- 그리 생각하며 옆에 있던 양파를 집어 들었다. 버섯이랑 감자 조금.. 그리고 죽에 또 뭐가 들어가더라. 언젠가 네가 해줬던 죽을 떠올리며 열심히 손을 놀렸다. 귀찮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르고 쉽게 속이 얹혀버려서 제대로 된 밥이 되려 어색했을 때 잔소리보다도 효과적..

세 번째 여름 2024.09.17

偶然

IF.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았다. ( = 뭘 하고 싶은지 여전히 스스로도 모른다.)얇고 길게 사춘기가 이어지고 있다. 우연(偶然) : 아무런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  계단을 내리는 발걸음 소리는 급했고 조금은 신경질적이기까지 했다.누군가를 찾는 듯 도중 빈교실을 기웃기웃 쳐다보기도 하고, 제 핸드폰을 켜 중간중간 시간을 확인했다. 유학생, 심지어 신입생한테.어딨 는지도 모를 학생을 찾아오라는 게 말이 돼?겨우 그 작은 나라 출신이라는 공통점 가지고. 같은 한국인이라고 뭐 다 구면인 줄 알아?  어지간히 화가 나더라도 구겨질 일 없던 미간이 조금은 좁혀졌다.유학생이 많다고 홍보를 할게 아니라 행정실 인력을 교체하던가.작게 곱씹으며 마저 계단을 내렸다. 적어도 과라던..

세 번째 여름 2024.09.12

표백

덜덜 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만 멍하니 쳐다봤다.'야밤에 이게 뭐 하는 짓이야..'언젠가 한 밤 중에 옆 집에서 들리던 소리에 혀를 차던 저가 생각났다.사람 일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네..혹시라도 지금 저를 욕하고 있을 옆 집과 이웃집에 속으로 조용히 사과했다.그치만... 지금 이걸 안 빨면 전 내일 학교에 못 간다고요. 평소라면 니트 조끼 따로 셔츠 따로 빨았겠지만시간도 시간이고, 피로가 잔뜩 몰려와 눈을 뜨고 있는 게 겨우라서미련하게 한 번에 때려 넣을 수 밖에 없었다.조끼가 줄어들지 않기를 바래야지.'이건 또 언제 말리고 언제 자...' 세탁실 벽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 화면만 껐다 켜며 의미 없는 행동만 반복했다.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믿었던 친구들의 이면.왜 그랬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당장 ..

미확인 메시지가 2개 있습니다.

[진이야, 나 영국 가.] [.. 사실 내일 출발이야.] 아침과 점심 그 애매한 사이, 간만에 느지막이 자고 일어났을 때 카톡 알림이 울렸다. 지금 한국은 8시쯤 됐으려나- 그런 가벼운 생각을 하다가 저가 제대로 글을 읽은 게 맞는지 한참 눈을 비비고 안경을 고쳐 썼다. '성우, 너는 왜 그런 말을 왜 이럴 때에..' 설레발치지 않는 성격임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물론 네 마음을 완전히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워낙 남 먼저 위하니까.. 혹시라도 연일 제쳐두고 올까 봐. 너의 배려였을 테지. .. 그래도 내가 영국에 있는데. 놀라움 다음은 아주 잠깐의 원망, 그다음은 괜히 간질거려 툭 튀어나오는 타박. 아마도 내일.. 오후 즈음이면 도착하려나. 시험은 4시쯤 끝나니까....

세 번째 여름 202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