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덜 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만 멍하니 쳐다봤다.
'야밤에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언젠가 한 밤 중에 옆 집에서 들리던 소리에 혀를 차던 저가 생각났다.
사람 일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네..
혹시라도 지금 저를 욕하고 있을 옆 집과 이웃집에 속으로 조용히 사과했다.
그치만... 지금 이걸 안 빨면 전 내일 학교에 못 간다고요.
평소라면 니트 조끼 따로 셔츠 따로 빨았겠지만
시간도 시간이고, 피로가 잔뜩 몰려와 눈을 뜨고 있는 게 겨우라서
미련하게 한 번에 때려 넣을 수 밖에 없었다.
조끼가 줄어들지 않기를 바래야지.
'이건 또 언제 말리고 언제 자...'
세탁실 벽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 화면만 껐다 켜며 의미 없는 행동만 반복했다.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
믿었던 친구들의 이면.
왜 그랬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당장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물어서 뭘 어쩔건데.
그리고 이 와중에 어딘가에도 마음 놓고 털어놓지 못한다는 무력감.
들어줄 사람이 있었어도, 어디 고민이 있냐고 물었어도 제 입으로 말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속으로만 삭혀야 한다는 것은 어쩐지 억울하기도 했다.
아까의 진흙은 이미 제 목구멍까지 틀어막았나 보다.
속은 답답하고 머릿속은 어지럽고..
꼭 이리저리 섞여 하염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세탁물 같았다.
유리 너머의 검은 물살을 응시하다가 희끄무레하게 비친 저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푹 숙여 무릎에 이마를 기댔다.
한숨 섞인 혼잣말은 물 마찰음 소리에 묻혔다.
저기에 넣고 돌리면 깨끗해지기라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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