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더라도 누가 만드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게 음식 맛이었다. 소위 말하는 곰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간편 조리법이야 유튜브나 블로그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건져낼 수 있었지만 누군가 만들어주었던 음식 맛을 그리면서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칼 잡는 걸 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미 말은 다 했을 것이다.
종종 과일과 야채를 박스로 보내주시던 외가댁에서 이번에도 뭔갈 보냈다는 연락에 그저 평소처럼 한 두 박스 정도를 예상했던 어느 날. 하필 지방 훈련에 와있던 참이라 며칠 집 앞에 쌓여있을게 눈에 훤했지만 날이 덥지 않으니 상하진 않았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집에 올라올 남은 4일을 내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지냈지만. 그리고 바라고 바라던 귀가의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어깨의 가방을 툭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무리 많이 먹는 청년이라지만 혼자 사는 집에 고구마를 다섯 박스나 보내주는 할머니와 이모의 큰 손을 누가 말리랴. 혹시나 하고 아버지한테 전화했더니 사정은 그쪽도 매한가지였다.
덕분에 한동안의 모든 끼니를 고구마로 때워야 했다. 체중 조절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형 감량해요?'라는 소리를 듣는 건 다반사였고 삼시세끼, 간식 모두 고구마로 대체하려니 이제는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미 연락해서 나눠줄 수 있는 애들한테 잔뜩 나눠줬음에도 두 박스나 남아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는 불합리였다. 그 와중에 잠시라도 애써 모르는 척을 하려 하면 기가 막히게 싹을 틔우는 녀석들 때문에 외식이나 배달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맛은 있다지만 이건 식생활의 붕괴라고!
그 새를 못 참고 폐기물이 되려는 고구마를 마냥 방치하자니 애써 생각해서 보내주신 할머니의 마음이 있는데 어쩌랴. 결국 황금 같은 휴일에 소매를 걷어붙이고서 박스를 뒤집어엎었다. 싹이 자란 부분을 숭덩숭덩 자르고 김장할 때나 쓰던 스텐 대야에 붓고서 흙을 씻어내니 그나마 양이 줄어 난 착각이 들긴 했지만 여전히 여전히였다. '물까지 묻은 마당에 이젠 어쩌지..' 반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던 와중에 머리 사이로 무언가 번쩍- 스쳐 지나갔다. 밍숭맹숭한 고구마에 달달한 설탕옷을 입혔던 맛탕.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먹었을 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는데. 그리고 목이 막힐 즈음엔 꼭 엄마가 찬 우유까지 따라주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디서 갑자기 힘이 샘솟았는지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맛탕임에도 이후에는 거침없이 손이 움직였던 것 같다. 생고구마가 아니니 조금씩 포장해서 나눈다면 이건 이거대로 나눔 간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잔머리까지 팩팩 돌아가니 아무래도 내 손이 큰 건 외탁이 아닌가 하는 자조적인 농까지 나왔다.
큼직하게 깍둑 썬 고구마튀김의 고소한 냄새, 그 위를 덮은 반질반질하고 달콤한 설탕 냄새까지. 식탁 위를 가득 메운 그릇과 통의 맛탕은 처음 만든 사람의 것이라기보단 훨씬 그럴싸한 모양새였다. 흘러내린 잔머리를 넘기고서 그제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니 시계는 벌써 오후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야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불러지니 허기를 느낄 새도 없었고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는 와중에 내 입에 넣을 새가 어디 있었을까. 어차피 차게 식혀도 맛있으니 한 김 식힌 후에 적당한 통에 나눠 담아 포장할 이따를 생각하며 의자에 널부러지듯 기대앉았다. 처치곤란이었던 고구마를 한 번에 정리했다는 개운함, 처음 만들었음에도 이토록 성공적일 수 있는지 기분 좋은 의문감이 들면 절로 감탄과 감격의 주먹이 쥐어진다. 그래도 남들에게도 나눠주는 건데 만든 사람이 기미는 봐야 하지 않겠냐며 젓가락으로 하나를 콕 찍어 한 입에 넣고서 열심히 놀려본다. 싹 난 부분은 전부 꼼꼼하게 잘랐는데 혹시라도 쓴맛이 날까 봐서 씹는 내내 미간이 진지했다. 적당히 바삭한 고구마 표면에 잘 눌어붙은 달달한 설탕 코팅. 서걱거리는 식감 없이 삶어진 안은 촉촉했고, 중간중간 씹히는 깨는 고소한 향까지 더해주었으니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별 세 개 이상의 맛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다 씹은 맛탕을 삼키고, 다른 하나를 더 입에 넣어 씹고 삼킬 때까지 얼굴에서 당혹감은 지워지지 못했다. 분명 성공적인 맛이었지만 만드는 내내 저가 상상하고 그리던 맛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내가 어릴 때 먹었던 맛탕을-... 그리고 뒤늦게서야 뭔갈 깨달은 듯 마른세수를 했다. 분명 저는 오늘 처음으로 맛탕을 만들어 봤다. 그리고 엄마가 만들어주던 맛탕은 십수 년 전이 마지막이었고. 옆에서 만드는 모습을 봤을 리가, 만드는 법을 물어봤을 리가. 식탁을 가득 채운 멋들어진 완성품들을 보고 있자면 뿌듯한 마음이 피어나는 와중에 알 수 없는 허무함이 함께 밀려왔다. 뒤늦게 일어나 프라이팬에 남은 시럽에다가 설탕을 더 넣어보기도 하고 물을 넣고 다시 끓여보기도 하고. 십 년도 더 된 기억을 되짚으며 어설픈 흉내를 내보려고 이리저리 손을 움직여봤지만 이제는 단맛에 혀 끝이 무뎌져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지경이었다. 딱 한 번만 더 먹어보면 정말 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짙은 한숨을 내쉬어봤자 먹어 볼 수 있을 리가. 하늘에서 레시피가 뚝 떨어질 리가. 이젠 어디 가서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뒤늦게 목이 막혀오는 불쾌한 느낌에 가슴만 쿵쿵 두들겼다.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음식도 맛있어진다지. 도중에 맛을 보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그런 생각이나 하며 식탁을 한 번 훑어봤다. 안도감이 드는 한 편 답답함과 무력감에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려는 걸 겨우겨우 삼켜내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찬 우유로나마 아쉬운 단맛을 잠재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