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상 맞춰둔 오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나 미리 취소 버튼을 누르는 게 평소의 루틴이었다. 유독 머리가 무겁고 몸이 축축 처지는 오늘은 예외였지만. 5분 단위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 것조차 힘에 부쳐 무력하게 베개 밑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숨 쉬기가 묘하게 답답하고 머리는 멍하니 익었고 두툼한 이불을 덮었음에도 몸이 으슬 떨려왔다. 아무래도 감기임이 틀림없었다. 어제 창문을 열어놔서 그랬나, 머리를 덜 말려서 그랬나.. 그치만 항상 이랬는데. 이유를 찾기에는 제 머리가 마음만큼 따라와 주지 않았기에 힘겹게 몸을 뒤집어 겨우겨우 팔을 뻗어 핸드폰이나 조용히 시켰다.
살아오면서 거의 감기에 걸릴 일이 없었기에 유독 더 몸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까 요즘에 독감주사 맞으라고 그러던데, 설마.. 괜한 불안감이 피어올랐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오늘 해야 할 훈련이며, 수업이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걸 생각하면 유행독감 보다도 밀릴 일들이 더 무서웠다. 유독 찬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바닥에 발을 대면 오소소 소름이 돋아 한 번 진저리를 치다가 겨우 땅을 딛었지만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픔이나 고통보다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피어오른 당혹감이 더 컸다. 감기도 감기지만 고작 이런 걸로 쓰러진다는 게 저 스스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중량을 높여 체력단련을 해도 다리에 힘 풀릴 일은 없었는데.
상황의 심각성을 몸으로 느끼고 나니 잔기침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분명 감기약이 어디 있었을텐데.. 한 번 주저앉으니 갓 태어난 새끼 말마냥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벌벌 거리는 꼴이 너무 처량해 차라리 무릎으로 기어가길 택했다. TV 진열장과 책상 서랍을 뒤엎었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약의 존재가 너무나도 절실했다. 제 건강을 너무 과신하고 안일하게 행동한 과거의 저를 원망하며 책상에 엎어지는 모양새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눈과 머리끝까지 피와 열이 쏠리는 기분이 들면 끄응.. 앓는 소리만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무가구 표면이 이마에 닿으면 그 찬기운이 잠시나마 저를 달래주는 것 같아서 이마와 뺨을 번갈아가며 댈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약을 사다달라하기엔 민망했고, 구급차를 부르자니 너무나도 유난 같았다. 제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몸을 끌고 응급실까지 갈 자신도 없었기에 엎어진 채로 멍하니 거실이나 눈에 담았다. 오늘따라 유독 집이 더 크고 조용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럽다고 하는구나..' 남들에게는 몸 관리 잘 하라며 잔소리나 해댔던 업보가 이리 돌아오는 것 같아서 그리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열이 내려있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