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종결 증후군 6

틀린 그림 찾기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더라도 누가 만드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게 음식 맛이었다. 소위 말하는 곰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간편 조리법이야 유튜브나 블로그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건져낼 수 있었지만 누군가 만들어주었던 음식 맛을 그리면서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칼 잡는 걸 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미 말은 다 했을 것이다. 종종 과일과 야채를 박스로 보내주시던 외가댁에서 이번에도 뭔갈 보냈다는 연락에 그저 평소처럼 한 두 박스 정도를 예상했던 어느 날. 하필 지방 훈련에 와있던 참이라 며칠 집 앞에 쌓여있을게 눈에 훤했지만 날이 덥지 않으니 상하진 않았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집에 올라올 남은 4일을 내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지냈지만. 그리고 바..

드레스와 불합리

16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코르셋은 미용을 목적으로 허리를 조이는 복대 형태의 기능성 속옷이었다. 지금에서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인식이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가녀리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신체의 여성을 최고 미의 상징으로 여겼다나. 갈비뼈가 부러지고 숨을 쉬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격정의 시대를 살던 귀족 여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를 꽉 졸라맸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 프랑스에서 10시간 하고도 한참 날아와야 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옷에 사람을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잠깐만! 야야, 야. 잠깐만!! 살! 살 찝혔어!!" "아~! 될 수 있었는데!" "염희수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유하~ 오늘은 드레스 피팅하는 날~ 이번 영상의 협찬 브랜드가 궁금하다면? 구독, ..

감기

형식상 맞춰둔 오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나 미리 취소 버튼을 누르는 게 평소의 루틴이었다. 유독 머리가 무겁고 몸이 축축 처지는 오늘은 예외였지만. 5분 단위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 것조차 힘에 부쳐 무력하게 베개 밑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숨 쉬기가 묘하게 답답하고 머리는 멍하니 익었고 두툼한 이불을 덮었음에도 몸이 으슬 떨려왔다. 아무래도 감기임이 틀림없었다. 어제 창문을 열어놔서 그랬나, 머리를 덜 말려서 그랬나.. 그치만 항상 이랬는데. 이유를 찾기에는 제 머리가 마음만큼 따라와 주지 않았기에 힘겹게 몸을 뒤집어 겨우겨우 팔을 뻗어 핸드폰이나 조용히 시켰다.  살아오면서 거의 감기에 걸릴 일이 없었기에 유독 더 몸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까 요즘에 독감주사 맞으라고..

표백

덜덜 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만 멍하니 쳐다봤다.'야밤에 이게 뭐 하는 짓이야..'언젠가 한 밤 중에 옆 집에서 들리던 소리에 혀를 차던 저가 생각났다.사람 일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네..혹시라도 지금 저를 욕하고 있을 옆 집과 이웃집에 속으로 조용히 사과했다.그치만... 지금 이걸 안 빨면 전 내일 학교에 못 간다고요. 평소라면 니트 조끼 따로 셔츠 따로 빨았겠지만시간도 시간이고, 피로가 잔뜩 몰려와 눈을 뜨고 있는 게 겨우라서미련하게 한 번에 때려 넣을 수 밖에 없었다.조끼가 줄어들지 않기를 바래야지.'이건 또 언제 말리고 언제 자...' 세탁실 벽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 화면만 껐다 켜며 의미 없는 행동만 반복했다.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믿었던 친구들의 이면.왜 그랬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