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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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장군 2024. 9. 19. 22:35

창문밖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눈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교실의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들었고 양 옆 반에서도 비슷한 녀석들이 있었는지 의자와 책상 밀리는 소리가 잠시 요란하게 일었다. 눈사람과 눈싸움이라는 단어가 시끌시끌하게 오갔고 발 빠른 누군가는 벌써 복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첫눈인데 그만큼 쌓이기나 할까.. 싶었지만 사실 빌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능까지 끝난 지금, 뜨끈하고 나른한 교실에서 애매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와중에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이벤트.

공부는 더 이상 하기 싫고 세 번이나 본 영화는 지루했고.. 수능 성적표가 나오지 않아 '아직은' 조금 더 천진할 수 있었다.

 

히터 열기에 잔뜩 따끈해진 뺨 위로 창문 사이로 새어들어온 찬 바람이 나앉았다. 적당히 제 뒷목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기분 좋아 잠시 눈을 감았다. 아주 간만에 시끌 거리는 운동장, 동시에 조금 휑 해진 교실을 번갈아 쳐다봤다. 앞으로 이 광경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술렁였다. 입동은 이미 지났는데.. 

 

녀석들이 나가서 그런걸까, 창문을 한참 열어놔서 그런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슬슬 어깨까지 으슬으슬해지면 슬쩍 창문을 닫았다. 밖에서 저리 신나게 뛰어노는 녀석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조금 미안했지만.. 역시 눈은 조금 이른 것 같아. 아직 난 너희와 조금 더 지루하게 시간을 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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