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_fd_hwSm9zI?si=MdukS1F3tB8PxCJ4
진동과 함께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비닐 팩 하나에 담겨있는 까맣고 걸쭉한 액체를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키고 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맛이었다.
좋은 것들만 넣어 달였다는데. 왜 몸에 좋은건 이토록 쓴 지, 먹을 때마다 적응 안 되는 맛을 이겨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이미 손은 서랍 안에서 사탕을 찾고 있었다.
다급하게 입에 밀어넣고 5초, 달큰한 사과향이 목과 코로 넘어오면 그제서야 깊은 숨을 들이내 쉰다.
뉘엿 해가 지는 창밖을 바라보다 그 옆에 걸터앉는다.
여름의 끝물인 지금. 해가 지면 선선한 바람이 이마에 송골 맺힌 땀을 오싹하게 훔쳐간다.
거리의 사람들은 제각기의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고 끝도 없이 이어진 도로, 그리고 그 위에 줄지어진 차들 또한 익숙한 제자리들을 찾아 미끄러지듯 사라진다.
세상은 바삐 굴러간다.
재난과 고통, 비명과 슬픔이 언제 이곳을 가득 채웠냐는 듯이 세상은 평온하다.
각자의 아픔을 잊으려 세상은 부던히도 노력했다.
공백과 상실을 메우기 위해 땀과 눈물을 굳혔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기도했다.
달갑지 않은 이별 뒤. 거짓말처럼 세상은 다시 제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다.
사방에서 환호의 소리가 들려올 때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어딘가에 있을 너를 찾으려 했던 걸까.
조금만 더 함께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끝없는 밤을 몰아내듯 해가 떠오르고.
깊은 잠에 든 것들을 깨우기 위해 봄비가 토독토독 내리면.
그 땅을 적시는 건 따뜻한 봄비, 봄비, 봄비.
묵직하고 짠. 봄비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언젠가부터 버릇처럼 쓰게 된 일기는 어느샌가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었다.
자그마한 노트에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은지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 내려간다.
끝이 조금 해진 사진을 얇은 코팅지가 감싸고 그것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가르고서 덮으면 입 안에는 애매한 사과향만 남아있다.
읽던 시집과 일기를 덮고서 버릇처럼 손목께를 더듬는다.
불그스름했던 하늘은 어느새 불을 끄고서 작은 등 몇 개만 촘촘히 켜두었고.
잠시 그 모습만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저 또한 이 감사하도록 지루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린다.
내일도 이 시간에. 또다시 편지를 보내야 하므로.
이제는 몇 번째인지 감히 세어보지도 않은 이번 일기장은 이제 막 세 번째 페이지를 채웠다.
뉴런들 사이에서 떠도는 아직 쓰지 않은 편지, 수십억 은하의 실타래 위에 이미 있었네
암흑 속으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안드로메다처럼 당신은 내게 다가오고 있었네
우리가 하나였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서로에게 전해졌네
당신이 느끼는 것을 나도 우주적으로 느꼈네
당신이 돌담을 넘어 숲 저편으로 사라진 뒤 구름이 쌓이고 눈이 대지를 휩쓸고 눈사람이 녹아 없어지고 천변만화의 구름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뭉치고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편지를 썼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썼네
당신에게선 아무 소식도 없고 하루는 비 내린 장독대에서 노랑할미새가 깃털을 고르고 있었네
마당귀 고인 물을 굽은 등으로 나도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까마득한 우주에서는 엇갈리는 유성들
장이지 [우주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