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들어서는 날이던가? 오늘따라 사람이 많은데.."
"못 들었는가? 웬 장물아비가 왔다던데?"
"장물아비? 뭐.. 얼굴로 벌어먹는 양반인가. 아낙네들만 문전성시구만."
"뭐라더라.. 서방에서 들여온 물건이라던데. 특이한 장신구라도 있는가 비-"
"흐음...~"
"왜? 안사람 사다 주려고? 같이 골라주랴?"
"응? 아, 됐네- 그 이.. 크흠, 부인은 저런 데에 영 관심이 없으이. 영 소탈해."
"글쎄 반짝거리는 걸 싫어하는 여인네들은 없대도~ 가세 가세. 나중에 나한테 따악~ 감사할 일이 생길 것이야."
언젠가 신기한 물건들을 잔뜩 이고서 나타나 시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던 장물아비란 작자는 한동안 마을에서 알음알음 화젯거리였더랬다. 서방에서 들여왔다는 물건들은 정말이지 죄다 처음 보는 생김새였고 그 모양도 빛깔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게 꼭 요물 같기도 했고. 가락지라던지 빗이라던지 친숙한 물건들에 새겨진 이색적인 색과 무늬는 무릇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는데, 그도 그럴게 사내인 저마저도 정신 팔리게 구경을 했던 게 여즉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바람처럼 사라진 수상한 상인 덕에 운 좋게 제 물건을 산 사람들은 며칠 부러움과 선망의 눈빛을 마음껏 누렸댔다. 희소성이라나. 그리고 저도 얼결에 사버린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
"서방이란 자가 부인한테 이리~ 무심해서야, 나 원."
떼잉- 장난스레 웃으며 다시 냇가로 시선을 돌리고 제 할 일에 정신 팔린 부인을 멍하니 쳐다봤다. 여인치고는... 아니지, 꼭 사내? 혹은 도토리 마냥 짧고 동글동글한 머리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이리 머리가 자란 거지? 그나저나 그걸 왜 난 이제 눈치챈 거지? 어느새 뒷머리는 목에 간당간당 닿는가 싶었고 고개를 숙이면 사락- 눈가를 가리우는 옆머리를 귀 뒤로 다시 넘겨주었다. 아마도 상대는 반쯤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겠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가슴 어딘가를 쿡- 찌르는 것 같아서 헛기침이나 해댔다. 남들은 청포물에 멱 감고 동백기름 바르고 반짝이는 장신구로 꾸미기 바쁠 때에 홀로 착실히 동글-하기만 한 머리가 나름 그의 특징이기도 했고 북적이는 곳에서도 특히 그 뒤통수만 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에 저는 참 좋았더랬지만...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저지르듯 사놓고 이걸 뭐 어디에 쓰라고 전해주지도 못한, 제 옷장 맨 밑에 고이 모셔 숨겨두었던 애물단지가 생각났다. 그때 그게 분명...
"... 그 혹시..."
"응?"
"예물을 지금 줘도... 받아주시오?"
"... 봉창 두들기지 말고 방맹이나 두들기쇼."
제 눈앞에서 손을 팍- 튕기니 찬 계곡물이 얼굴을 적셨고. 정신 차리듯 눈을 두어 번 꿈뻑이다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참 잘.. 어울릴 것도 같은데. 손은 착실히 물에 적신 옷감을 주무르고 있는 반면에 눈은 저도 몰래 그 옆얼굴을 흘끔흘끔 훔쳐보고나 있었다. 하긴 누가 예물을 빨래하다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