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장군 2024. 10. 22. 02:18

본디 성격이 급한 편이긴 했다.
꿀 같은 쉬는 시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활 쏘는 연습이 하고 싶다며 뛰쳐나가 동기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고,
움직이지 말라던 의원나리의 말을 무시한 덕에 꿰맨 자국이 또 터져 애먼 살까지 바늘에 찔릴뻔한 적도 있었다.
 
'그리 성격이 급해서야 자네는 혼례 전에 애부터 생기겠네!'
저들 딴엔 농이랍시고 가벼이 던지던 동기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던 게 딱.. 달포 정도 되었나.
혼례라는 단어는 여즉 저에게 연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남은 활이나 쏘러 갔더랬지.
그리고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른다는 걸.. 비소로 오늘 몸으로 체험했다.
 
무슨 정신으로 하루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새신랑이랍시고 여기저기 불려 가는 게 맞나.
그러보니까 어릴 적 살던 옆집 혼삿날 잔치에서 즐겁게 뛰어 다닌 기억이 있는 거 보면 확실히 기쁜 날임은 분명했으나..
신랑 신부가 너무 바빠 마을 사람들이 대신 혼례를 준비해준다던 마음 따뜻한 사연의 주인공이 저희들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외양간이 무너졌대서 고치러 달려왔더니 우리 집 외양간이었다는 소리랑 뭐가 다르단 말인지..
 
"..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한 게 정말 혼.. 혼례인 거요?"
"머리 아프니까 잠깐 그 입 좀 다물고 있으시오.."
"믿기지 않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이랑 내가 혼ㄹ.우으읍..!!!"
"아 누구는 하고 싶어서 한 줄 아시오?! 첫날밤부터 신방에서 고함소리 들리면 퍽이나 좋은 소문나겠네!!"
 
지금 소리는 그쪽이 더 크게 지르고 있으면서..
쫑알쫑알 대던 입이 틀어막히면 반눈으로 째려볼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나리 탓이오. 내가 그렇게 주의하라고 말을 했건만.... 떼잉.."
".. 이거 또 왜 상황이 이렇게 되는 거요? 남이 들으면 오해하겠네! 난 왜 우리가 절절하게 장거리 연애란 걸 하고 있는 사이가 된 건지부터 머리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데? 난 그냥 약만 타러 왔을 뿐인데?"
"그 약을.. 남들 다 자고도 남을 야밤에, 쥐새끼마냥 와서 받아가니까 문제인 거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장거리 연애가 문제요? 난 최 씨 영감님한테 야반도주할 거냐는 소리까지 들었소!!!!"
"에헤이 진짜 조용히 하라던 사람이 누군데..!!.. 좀 조용히 하시오..~! 누구 말대로 첫날밤부터 이혼하는 거 아니냐고 소문 돌겠네!"
"... 졸지에 비녀 틀게 생겼는데 소문 하나 더 돌아다닐 바에는 과부라고 불리는 편이 마음 편하겠소."
"... 거 참 살벌한 얘기를.. 친우라고 생각했네만 난.."
"친우는 얼어 죽을.. 웬수요 웬수!!"
 
동시에 베개가 얼굴로 퍽- 날아왔지만 피할 겨를도 없었고, 그대로 풀썩- 뒤로 누워버렸다.
'강화에 계신 할아버지, 건강하시죠. 몹쓸 손자 놈이 소식도 없이 혼례를 올려버리고 말았어요.
한양에 올라가서는 사고 치지 말고 의젓하게 지내라고 하셨는데... 그치만 저 곤장 맞을 짓은 결단코 하지 않았어요.'
어째서인지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져서 코 끝이 찡 해져서는.. 훌쩍- 하는 소리나 내었었다.
 
"그대는 체력이 넘쳐서 이런 것쯤이야 별 일도 아니겠소? 뭔 놈의 활옷은 이리 거추장스러운지.. 에잇.. 이익.. 내 이 짓은 두 번은 못하겠네."
"지금 내 모습이 보이지 않소? 혼례를 한 번 더 치룰 바엔 내 차라리 저 변방으로 홀로 떠나겠소."
"... 마음에도 없는 혼례였다지만 지금 그 말은 상당히 기분 나쁜 거 아시오?"
"..... 혹시 우리 아까부터 하고 있던 게 부부싸움인 거요?"
"내 그냥 말을 말지!!!"
 
그 뒤로도 한참을 서로 씩씩거리다가 동이 틀 즈음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새벽녘 뒤척이다가 베개도 아니고 팔도 아닌 제 배를 베고 자는 제 신부라는 자를 보고서야 어제의 소동이 꿈이 아니었음을 한 번 더 깨달아버렸고,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음에도 어정쩡한 자세로 어스름한 문가만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이제 호칭은 무어라 불러야 하지..'